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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도람뿌 작성일21-02-22 09:56 조회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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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33년 4월 3일이었습니다. 경주 노서리에 살던 주민이 호박을 심다가 장신구 10여점을 발견했습니다.파워사다리

즉각 신고가 이뤄졌고, 총독부 박물관은 발굴전문가로 아리미쓰 교이치(有光敎一·1907~2011)를 급파합니다. 발굴결과 순금제 목걸이 33점과 곡옥·관옥·환옥 달린 목걸이, 순금제 귀고리 등 수십 여 점의 유물을 수습했습니다. <조선시보>는 4월9일부터 20일과 21일까지 ‘고고학상 중대자료 희대의 귀고리 장식 발견’ 등의 제목으로 대서특필했습니다. 아리미쓰는 유물이 발굴한 곳을 노서리 140호분에 딸린 무덤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발굴은 그것으로 끝났습니다.


호우총에서 출토된 청등그릇 세트에는 ‘광개토대왕’ 관련 명문과 함께 명문의 맨 윗부분에 ‘#(井)’ 자 혹은 문양이, 명문의 맨 마지막에는 ‘十’ 자 혹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十’자는 그냥 ‘10’을 기리킨다고 보아 ‘광개토대왕의 서거’를 기리는 청동그릇을 시쳇말로 ‘리미트 에디션’, 즉 한정판으로 제작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그렇다면 이 청동그릇은 한정판 중 10번째 그릇이라는 뜻일 수도 있다. |국립박물관의 <호우총·은령총 발굴조사보고서>, 을유문화사, 1946년에서

■한국-일본-미국 합작발굴

1945년 해방이 되자, 일본인들은 현해탄을 건너 귀국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해방후 국립박물관장이 된 김재원 박사(1909~1990)의 눈에 띈 이가 바로 일본인 아리미쓰였습니다. 아리미쓰는 패망후 조선총독부 박물관을 한국인에게 인계하느라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남아있던 인물이었습니다. 일본 교토대(京都大)를 나와 15년간 식민지 한국땅에서 발굴조사를 했던 고고학자였습니다.

급기야 1945년 12월 3일 인수인계가 마무리되어 아리미쓰는 귀국선을 타야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김재원 관장이 막아섰답니다. “이제 해방이 되었으니 우리 손으로 발굴조사 좀 해봐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그럼 우리끼리 하면 될 거 아니냐, 왜 일본인을 곁에 두느냐 하는 의문이 들겠죠. 불행히도 우리에게는 발굴경험이 전무했답니다. 일제강점기에 여러 발굴을 했지만 일본인들은 새끼줄을 쳐놓고 한국인의 출입을 철저히 막아놨으니 뭐 발굴을 배울 재간이 없었죠. 해방이 되었지만 당시는 미군정청 치하였습니다.


1946년 5월 해방 후 첫 발굴인 ‘노서리 140호분(호우총)’에서 출토된 청동그릇. 그릇 밑바닥에서 ‘을묘년(415년)에 제작된 고구려 광개토대왕 관련 청동그릇’을 의미하는 ‘乙卯年國岡上廣開土地好太王壺우十(을묘년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호우십)’이라는 명문이 보였다.|국립경주박물관 제공

그래서 아리미쓰를 귀국하지 못하도록 미 군정청의 양해를 얻었습니다. 당시 발굴은 미 군정청의 본부가 있는 동경 맥아더 사령부의 허가를 받아야 했습니다. 이때 미군정청 문교부 교화국에서 한국 미술 및 역사보호 담당이던 유진 크네즈(1916~2010)가 동분서주 한 끝에 발굴허가를 이끌어냈습니다. 미군정청은 발굴비용까지 댔답니다. 발굴대상으로는 아리미쓰가 1933년 미처 마무리하지 못했던 ‘노서리 140호분’으로 낙착되었습니다. “하는 김에 경주의 단독고분 중 가장 큰 봉황대(지름 82m, 높이 22m) 고분을 파보면 어떠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발굴 경험이 없는데 괜히 팠다가 감당못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지배적이었답니다.


조선시보 1933년 4월 20일과 21일자가 연속으로 노서리 140호분의 발굴소식을 전하고 있다. 조선총독부에서 파견된 아리미쓰 교이치가 발굴했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일본인 아리미쓰의 조사는 해방후 우리 손의 첫발굴로 이어졌다. |

■‘쎈세이순’한 발굴성과

마침내 1946년 5월 2일부터 노서리 140호분을 발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발굴 12일이 지난 뒤인 5월14일 엄청난 유물이 노출되기 시작합니다. 1948년 발간된 <호우총과 은령총 발굴조사보고서>(국립박물관)가 전하는 그 날짜 발굴 일지는 “(1946년) 5월14일…청동제 용기를 채취(採取)했는데, 용기의 밑부분에 명문이 나타나 큰 ‘쎈세이순’을 일으켰다. 16자 외에도 무슨 기호 같은 것이 있다”고 기록해놓았습니다.

당시 동아일보 기사 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흥미롭습니다.

“만주 호태왕비문에서와 같은…‘乙卯年國岡上廣開土地好太王壺우十(을묘년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호우십)이라는 명문이 있다. 약 1530년전 당시 신라와의 관계가 깊은 고구려에서 서거한 광개토대왕의 유업을 사모하여 제작한 그릇을 신라에 보낸 것….”(1946년 5월25일)


1933년 4월9일자 <조선시보> 기사. 경주 노서리의 주민 김인동씨의 아버지가 호박을 심다가 금제 장신구를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고고학상 중대자료이며 희대의 귀고리 장식이며 삼국시대 왕족의 유품이라고 흥분했다.

■광개토대왕비문과 동일인의 필적?

한마디로 경주의 호우총에서 고구려 정복왕인 광개토대왕의 유물이 발견된 것입니다. 깜짝 놀랄만한 발굴성과였죠. 발굴보고서도 “이 청동기는 이번 경주발굴에서 가장 중대한 발견품이며 고적발굴사상 특필(特筆)할 만하다”고 흥분했습니다.

특히 청동항아리 명문의 글씨체가 1883년 중국의 지안(集安)에서 발견된 광개토대왕의 비문과 동일인의 필적인 것처럼 흡사했구요. 글자구성과 내용도 거의 같았습니다. 발굴자들은 그 청동기가 고구려에서 제작되어 신라에 운반된 것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일단 그 고분의 명칭은 ‘노서리 140호’에서 ‘호우총’으로 바뀌었습니다. 주인공을 모르는 고분의 경우 도드라진 출토유물의 특징을 따서 이름을 붙입니다. 140호 고분의 경우 ‘호우(壺우)’(항아리와 그릇)에서 명문이 나왔다고 해서 ‘호우총’이란 명칭을 얻게 됩니다.


1948년 간행된 <호우총·은령총 발굴조사보고서>는 청동그릇에 보이는 ‘광개토대왕 명문’이 중국 지안(集安)의 광개토대왕비문 글씨와 동일인이 쓴 것처럼 비슷하다고 기록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누가 가져온 청동그릇일까

궁금증이 난무했답니다. 먼저 ‘을묘년’은 어느 해일까요. 광개토대왕(재위 391~412년)이 서기 412년에 죽고 난 지 3년 후가 되는 서기 415년에 해당하고, 따라서 이 청동항아리는 그 해에 제작된 것이 분명했습니다. 누가 이 청동항아리를 신라에 가져왔고, 누구를 묻을 때 이 항아리를 넣어준 것일까요.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복호’라는 인물이 일단 손꼽힙니다.

즉 “412년(실성왕 11년) 고구려에 갔던 복호가 418년(눌지왕 2년) 제상 나마와 함께 돌아왔다.”(‘신라본기·눌지왕조’)는 기록이 눈에 밟힙니다. 신라 제17대 내물왕(356~402)의 왕자이자 눌지왕(417~458)의 동생인 복호(卜好)가 412년 인질의 신분으로 고구려에 갔다가 6년 만인 418년에 신라로 돌아왔다는 기록입니다.

그렇다면 그 복호와 이 호우총 유물이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일까요.


‘노서리 140호 고분(호우총)’의 발굴조사를 위해 찍은 사진. 고분 위에 집에 들어서 있었다.|국립박물관의 <호우총·은령총 발굴조사보고서>, 을유문화사, 1946년에서

학계에서는 고구려가 이 청동그릇을 415년 광개토대왕 서거 3주기 혹은 안장 1주년을 기념해서 광개토대왕을 추모하고, 그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작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때 마침 인질로 와 있는 복호에게 기념으로 준 것일까요. 그게 맞다면 복호가 신라로 돌아올 때 그 항아리를 가져왔고, 훗날 그가 죽자 함께 묻어 주었던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이 고분의 주인공은 복호가 됩니다.

그러나 이 주장에는 맹점이 하나 있습니다. 호우총의 연대는 출토된 유물의 연대로 미루어볼 때 6세기 전반 쯤으로 추정됩니다. 그렇다면 이 청동 항아리가 제작된 시기(415년)와 100년 정도 차이가 있습니다.

그게 너무 무리한 주장이라면 할아버지(복호)의 유품을 대대로 간직하고 있던 직계자손이 묻힌 무덤이라는 견해도 나올 수 있겠네요. 다르게 본다면 이럴 수도 있죠. 이 청동항아리를 당시 광개토대왕을 기리기 위한 제사에 참석했던 신라 사절이 가져온 것이라는 추정도 가능하죠,


전국 삼국시대 유적에서 ‘#’문양이나 ‘우물 井’자가 새겨진 토기 등이 종종 출토된다. 제작지나 제작지, 혹은 주문처를 표시했거나 귀신을 쫓는 벽사의 의미일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十’자의 정체…‘리미티드 에디션’일까

또다른 수수께끼가 있습니다. ‘호우십(壺우十)’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호우’란 ‘술과 같은 무엇을 담는 용기(사발)’로 보면 되겠지만 ‘十’의 의미는 알쏭달쏭합니다. 발굴보고서는 “해석이 곤란하다”면서 “그 경우 이 十자를 다만 여백을 채우는 의미로 보아야 할 줄 안다”고 얼버무려 놓았답니다. 그러나 혹자는 그냥 숫자 십(十)으로 보면 된다고 합니다. 415년 광개토대왕을 기리기 위해 기념으로 10개를 만들었던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이 청동항아리는 엄청난 ‘리미티트 에디션(한정판)’이 되는 셈이 아닌가요. 그 10개 중 1개가 신라에 왔다면 얼마나 값어치가 대단했을까요.


<호우총·은령총 발굴조사보고서>(1946년·국립박물관)에 실린 호우총 출토 유물들. 유물의 연대로 보아 6세기 전반 무렵에 조성된 고분으로 추정된다.|국립중앙박물관 아카이브·장상훈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완 제공

■#(井)은 해시태그인가 우물인가

또하나 해결해야 할 궁금점이 또 있네요. 바로 명문 윗부분에 새겨진 ‘우물 井’자 혹은 ‘#문양’입니다.

당시의 발굴보고서는 “井(#)자형은 이 보이는데 이 역시 무슨 의미를 가진 것이 아니고 여백을 메우는 한 장식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는데요.

소설가 최인호씨는 소설 <왕도의 비밀>에서 이 ‘#’자는 고구려의 정복군주 광개토대왕을 상징한다고 해석했습니다. 하지만 학자들의 반응은 “제대로 된 논문조차 거의 없다”면서 섣부른 추정을 삼가고 있답니다.

‘#’가 새겨진 유물은 호우총 한곳에서만 출토되는 것은 아닙니다. 1997년 풍납토성에서도 발굴됐고, 구의동 아차산 4보루에서도 발견되는 등 끊이지 않고 확인되고 있어요.


호우총에서 발견된 유물. 유리 눈알에 푸른 빛 홍채를 옻칠한 나무에 표현했기 때문에 발굴자들의 등골이 오싹했다고 한다. 이 유물은 훗날 백제와 가야지역에서 종종 출토되는 화살통 장식으로 밝혀졌다.|국립박물관의 <호우총·은령총 발굴조사보고서>, 을유문화사, 1946년에서

삼국시대 토기 중에는 井, 小, X, 工, 大, 卍자 모양이 새겨진 경우가 많답니다. 이를 두고 제작지와 제작자, 혹은 주문처를 표시한 것이거나 벽사(피邪·귀신을 쫓는 것)의 의미일 수 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뭐 웃자고 하는 얘기지만 최근 #문양이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뜨고 있죠. ‘해시태그(hashtag)’ 운동인데요. 아시다시피 ‘해시태그(hashtag)’는 게시물에 일종의 꼬리표를 다는 기능이죠. 특정 단어 또는 문구 앞에 해시(#)를 붙여 관련정보를 한곳에 묶을 때 사용합니다.

안그래도 고구려 호우총에서 발견된 청동그릇에 새겨진 #표시가 대체 뭔지 몰랐었는데…. 이제야 알 것 같다구요. 고구려인들이 ‘#을묘년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호우십(#乙卯年國岡上廣開土地好太王壺우十)’라 새긴 것이 해시태그 운동의 표시일 수 있다구요. 그저 웃자고 하는 얘기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리건판사진에 찍힌 ‘호우총 발굴조사’ 기념사진. 해방 후 최초의 고고학 학술발굴이었던 호우총 조사는 발굴주관은 한국, 발굴지도는 일본(아리미쓰), 발굴장비와 비용은 미국(군정청)이 나눠 맡은 국제발굴이기도 했다. 발굴현장에 김재원 국립박물관장 등 한국측 조사단원과 일본인 아리미쓰, 미국인 크네즈 대위 등이 모였다.|장상훈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제공파워볼게임

■화살통을 귀신가면으로 오해

한가지 여담을 소개해드리자면요. 호우총에서는 발굴자들을 평생 가위 눌리게 한 유물이 출토됐는데요.

나무로 만든 위에 옻칠을 했는데 눈알은 유리이고 그 홍채에 해당하는 부분은 푸른빛이었으니 발굴자들이 소름끼칠 만했죠. 당시 연구자들은 그 유물을 ‘방상씨면’이라 규정하고 “방상씨는 웅피(熊皮)를 쓰고, 황금 눈 넷을 단 면을 쓰며 무기를 들고 역귀를 몰아내는 존재”라는 <주례(周禮)>를 인용했어요.

그러나 이 유물은 훗날 백제·가야지역에서 종종 발견되는 화살통이었답니다. 화살통을 역귀를 몰아내는 무서운 존재로 여기고 호들갑을 떨었다니 쓴웃음이 나옵니다.

호우총 발굴은 광복 후 최초의 고고학적인 학술발굴이었고 발굴주관은 한국, 발굴지도는 일본, 발굴 장비와 발굴비용은 미국이 각각 담당한 최초의 국제발굴이라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또하나의 여담.

발굴이 끝난 뒤 김재원 관장은 일본인 아리미쓰를 지프에 태워 부산 부두까지 태워주었답니다. 아리미쓰는 한국 국립박물관의 환대를 받는 몇 안되는 일본인이었는데요. 1967년 방한 때에는 때마침 회갑(11월10일)을 맞아 한국측이 회갑연까지 베풀어 주었답니다. 1907년생인 아리미쓰는 2011년 향년 104살의 천수를 누리고 타계했습니다. 일본인이지만 그나마 해방후까지 한국의 최초 고고학발굴에 도움을 주었으니 그렇게 장수한 것이 아닐른지요.(이 기사를 쓰는데 장상훈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의 도움말과 자료 제공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경향신문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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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KBI 금융DT 테스트' 두차례 시행…금융위 시정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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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민선희 기자 = 한국금융연수원이 주무부처에 등록도 하지 않고 민간 자격시험을 만들어 시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22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금융연수원은 지난해 디지털 금융 관련 지식과 업무활용능력 등을 평가하기 위한 'KBI 금융DT 테스트'를 신설해 7월과 11월 2회 시행했으나 정작 주무부처에는 이 자격시험을 등록 하지 않았다.

금융위에 따르면 '자격기본법'상 민간자격을 신설해 관리, 운영하려는 자는 해당 민간자격을 주무부처에 등록해야한다. 이를 준수하지 않으면 '기관주의'에 해당한다.

다만 금융위는 금융연수원에 "KBI 금융DT테스트를 주무부장관에게 등록하라"고 시정을 요구하는 데 그쳤다.

금융연수원이 디지털 금융 교육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시험을 만들었고, 전문교육 연수기관으로서 인증 테스트를 운영할 충분한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고려됐다고 금융위는 설명했다. 또 '자격기본법'상 등록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에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볼 수 없어 적극행정 면책을 했다고 밝혔다.

한편 금융연수원 파견교수들은 책임 강의시간도 준수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위 조사 결과 지난 2017~2019년 금융연수원 파견교수 5명의 책임강의시간 미달률은 65.8%에 달했다.

이에 금융위는 금융연수원에 "파견교수가 책임강의시간을 준수할 수 있도록 강의시간을 배정하고, 특임업무를 부여하며 이에 대한 증빙을 명확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주의 조치를 내렸다.

금융위는 금융연수원이 직원을 채용하면서도 인사위원회의 적정 권한을 준수하지 않았다며 "채용 시 부적격사유에 대해 구체적이고 객관적 사유를 제시할 필요가 있고, 인사위가 적정 권한 내로 운영될 필요가 있다"고 주의 조치를 했다.

minssu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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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윙 등 공시지원금 상향조정

삼성 점유율 70% 독과점 우려

단말기 가격상승 등 부담 지적

과기정통부 "대책 마련하겠다"


LG 윙. LG전자 제공
LG전자의 스마트폰 사업 철수가 임박한 가운데, LG전자 5G 스마트폰의 구매가도 하락하고 있다. LG전자가 스마트폰 사업 정리를 공식화 하면서, LG전자 플래그십 폰의 가격이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

사업정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출고가를 인하한다는 평가와 함께, 일각에서는 사업 철수에 따른 재고떨이의 성격이 강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21일 스마트초이스에 따르면 SK텔레콤, LG유플러스가 최근 'LG 윙'을 비롯해 LG 5G 스마트폰의 공시지원금을 잇따라 상향 조정했다. 특히 LG전자의 전략스마트폰인 'LG 윙'은 LG전자의 기대가 어느때 보다 컸던 스위블(Swivel) 폰으로, 삼성전자의 폴더블폰과 함께 폼팩터 혁신을 주도할 모델로 주목받아왔다.

LG 윙은 가로와 세로가 만난 형태의 스마트폰으로 평소에는 바(bar) 타입으로 쓰다 멀티태스킹을 할 때는 메인스크린을 회전해 보조스크린과 함께 쓰는 방식이다. 그러나 당초 폼펙터 혁신을 주도할 것이란 기대와는 달리, 시장이 화면이 접히는 폴더블 시장으로 재편되면서 결국 흥행에 실패했다.

이에 맞춰, 각 통신사들이 공시지원금을 조정하며 사실상 재고털이에 나선 상황이다.

SKT는 지난 17일 LG윙의 공시지원금을 요금제별 38만9000~50만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SKT가 LG 윙의 공시지원금을 8만7000원~17만원 선으로 책정한 것에 비하면, 최대 3배 가량 대폭 높인 금액이다.

SKT에 앞서 LG유플러스도 지난해 12월 LG 윙의 공시지원금을 5G 시그니처, 5G 프리미어 레귤러, 5G 프리미어 슈퍼, 5G 프리미어 플러스 이용 고객을 대상으로 최대 60만원까지 높인 상태다.

KT는 3사 중 유일하게 LG 윙의 공시지원금을 조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KT 역시 조만간 LG 윙의 공시지원금을 상향할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현재 KT의 LG 윙 공시지원금은 최대 24만원 선이다.

SKT, LG유플러스가 공시지원금을 대폭 조정한 모델은 LG 윙 뿐만이 아니다. 또 다른 LG전자의 5G 스마트폰 'V50 씽큐'와 함께 후속제품인 'V50S 씽큐'의 공시지원금도 조정됐다. LG V50 씽큐는 2019년 5월, LG V50S 씽큐는 2019년 10월 시장에 출시됐다. 이 중 V50 씽큐는 LG전자가 최초로 선보인 5G 스마트폰이자 탈착식 듀얼 스크린을 적용한 제품이다.

SKT의 LG V50S 씽큐 출고가는 84만7000원, 최대 공시지원금은 60만원으로 실 구매가격은 대폭 떨어졌다. LG유플러스도 지난달 21일 LG V50 씽큐의 공시지원금을 최대 73만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공시지원금이 올라간 반면 제품 출고가는 75만200원까지 낮아졌다.

한편,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LG전자의 스마트폰 철수와 관련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17일 국회에서는 LG 스마트폰이 시장에서 철수하면 삼성전자 점유율이 70% 이상으로 과도하게 높아지고, 단말기 가격 상승 등 소비자 부담이 과중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와 관련, 최기영 과기정통부 장관은 "공식화된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시장 동향을 보고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답했다. 또 삼성, 애플의 단말기 독과점 유통구조로 인한 단말기 가격 상승에 대해서는 "이 때문에 자급제폰 활성화 노력을 많이 하고 있으며 앞으로 개선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만, 중저가폰 쿼터제 도입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김은지기자 kej@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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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육원 '패션&메이크업으로 본 북한사회' 발간


[서울경제]

북한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두 여성 리설주 여사와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패션 코드가 눈길을 끈다.

박계리 통일교육원 교수는 21일 '패션&메이크업으로 본 북한사회' 책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부인 리설주 여사와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당 부부장의 패션 특징을 분석하고 북한 여성의 패션 트렌드를 소개했다. 2012년 7월 김 위원장의 부인이라는 사실이 처음으로 공식 확인된 리 여사는 등장부터 파격적인 '퍼스트레이디 룩'을 선보였다.

북한에서 '조선옷'으로 불리는 한복 대신 노란색 물방울무늬 원피스와 하얀색 카디건 차림에 하이힐을 신거나(2012년 7월 경상유치원 현지지도 동행), 검은색 원피스에 빨간색 물방울무늬 재킷을 착용한 채 오픈토 하이힐을 신고(2012년 7월 능라유원지 준공식 참석) 대중 앞에 섰다.




그간 북한 사회가 여성 옷차림으로 권장하지 않던 몸매가 드러나는 원피스나 화려한 무늬의 옷들도 거침없이 소화했고, 때로는 바지를 입기도 했다. 리 여사가 선호하는 치마 길이는 무릎에서 손가락 2개 정도 길이로 내려오는 이른바 '샤넬라인'이다. 앉았을 때 치마가 무릎 위로 살짝 올라오는 게 특징이다. 아울러 원피스는 상당수가 허리 라인을 실제 허리 위치보다 높게 재단해 다리가 길어 보이는 효과를 노렸다.

다만 리 여사는 퍼스트레이디의 지위가 강조되는 외교무대나 공식 석상에서는 화려한 패션을 자제했다. 일례로 2019년 중국 시진핑 국가 주석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는 잔잔한 포인트 장식이 박힌 한복을 착용했고, 2018년 남북 정상의 백두산 등정 때도 활동성이 좋은 바지 대신 검은색 정장 치마를 입었다.




반면 친오빠의 국정 운영을 적극 보좌하는 김여정 부부장의 옷차림은 일하는 북한 여성의 전형적인 패션을 선보인다. 김 부부장은 리 여사와 달리 화려한 원피스를 입는 일이 거의 없고 대부분 단정한 에이치(H)라인 투피스를 선호한다. 활동하기에 적합한 무릎 위 길이의 스커트를 주로 입으며 컬러는 검은색과 하얀색 위주의 차분한 톤이 주를 이룬다. 그러면서도 블라우스 목 부분을 스카프 형식으로 디자인하거나 진주 장식 등으로 포인트를 줬다.

북한 여성의 장신구 패션도 2000년대 들어서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애초 북한은 장신구 착용을 권장하지 않았으나 이 시기부터 해외 문화 유입이 활발해지면서 귀걸이, 목걸이, 반지 착용이 유행했다. 박 교수는 "과거에는 반감이 컸던 귀를 뚫어 귀걸이를 하는 패션이 점차 젊은 층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며 "그럼에도 리설주는 여전히 귀를 뚫지 않았고 귀에 딱 붙는 작은 귀걸이를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또 김여정 부부장은 김일성·김정일 초상휘장을 착용하기 때문에 브로치 장식을 하고 등장한 적이 거의 없지만, 초상휘장을 착용하지 않는 리 여사는 간혹 가슴에 브로치 장식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박예나 인턴기자 yen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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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마루야마 다쓰야(丸山達也) 시마네(島根)현 지사에게 ‘다케시마(竹島 ·일본식 독도 명칭)의 날’ 행사를 폐지하라는 항의 메일을 보냈다고 22일 밝혔다.

서 교수는 이날 다쓰야 시마네현 지사에 보낸 항의 메일에서 "16년 동안 행사를 진행한다고 해서 독도가 일본 땅이 되진 않는다.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독도는 명백한 대한민국 땅이기 때문"이라고 알렸다. 이어 "독도에 관한 진실을 잘 모르는 것 같아 일본어 자료를 함께 첨부한다"며 일본어로 독도를 설명한 자료를 함께 동봉한 뒤 "잘 살펴보고, 행사를 반드시 폐지하라"고 촉구했다.


시마네현 청사내 비치된 다케시마 자판기.서경덕 교수 제공./서경덕 교수 페이스북

시마네현은 2006년부터 다케시마 편입 고시일인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정하고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올해도 정부가 파견한 차관급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다.

앞서 서 교수는 이 행사의 규모나 관심도 등을 국내에 알려 경각심을 고취할 목적으로 기념식을 앞두고 지금까지 6차례 시마네현을 방문했다. 다만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현장을 가지 못하고 항의 메일로 대체했다고 전했다.

서 교수는 지방 소도시에서 시작된 행사가 이제는 수많은 일본 현지의 전국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며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파워사다리

서 교수는 "지속적인 행사로 인해 도쿄(東京)에 다케시마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영토주권전시관’이 세워졌고, 다른 대도시로도 확장해 개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며 "일본의 끝도 없는 억지 주장과 기념행사 강행에 적극적인 대응을 넘어 전방위적인 독도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은 인턴기자 youngyoung100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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